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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6일 화요일

원균 장군에 대한 진실


원균 장군에 대한 진실



우리역사에 聖자가 붙은분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聖雄 이순신 장군이시겠죠.
그리고 그의 대척점에 서있는 인물이 바로 원균 장군입니다.

일반인이 기억하는 이장군과 원장군의 이야기는
속좁은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했고
전투에 나섰다가 패전했다.
속좁고 능력도 모자란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인류 역사상 그 유래가 없는 해군장수입니다.
세계 2 대 해전으로 이순신과 넬슨을 비교하고 있긴 하지만
인류 역사상에 해신이라고 불릴만한 인물이 있다면 단연 이순신 장군 한분뿐입니다.

러일전쟁당시 해전을 지휘해서 승전을 올린 일본의 도고제독은
그후 승전축하연에서 기자가
도고 제독의 승리는 조선의 이순신, 영국의 넬슨에 비교할만 한 대승리 입니다. 라고 말하자
 넬슨 제독에 나를 비교하는것은 인정할수 있다. 그러나 이순신 제독과의 비교는 불가하다.
인류 역사상 海神이라고 부를수 있는 인물이 있다면 그건 이순신 뿐일것이다.
이렇듯 적국의 장수에게까지 극존중을 받았던 이순신 제독입니다.

그런 이순신 장군의 대척점에 서있었으니 원균에 대한 평가는 야박할수밖에 없습니다.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했고 그래서 이순신은 삭탁관직 당했고
그자리를 원균이 차지했고 그리고 전투를 지휘했는데 능력이 부족하여 대패했고 자신도 죽었다.
죽어도 싼 죽음이였다.
라는 인식이 대다수 후손들의 역사상식입니다.

원균이 이순신 대신에 전투에 참여했고 패전했으며 자신도 전사했다.
ㅡ 칠천량 해전 ㅡ
이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런 패전지장이기 때문에 역사적 박해(?)를 받고 있는것이죠.

그렇다면 칠천량 해전을 이순신이 지휘했더라면 어땠을까요 ?
해신 이순신이였으니 당연히 이겼을까요 ?
아닙니다. 그 전투는 이미 패배가 결정되어있는 전투였습니다.
그래서 이순신은 참전하지 않았습니다.
선조가 싸우라고 등을 떠밀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순신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싸우면 질것이 뻔한 전투 .
그래서 이순신은 출정하지 않았고 이기기위해서 수륙병진책을 장계로 올렸지만
선조는 세자였던 훗날의 광해군을 내려보내면서까지 전투를 재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은 출정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순신은 왕명을 거역했다는 죄를 짓고 서울로 압송되게 됩니다.

무능하고 졸렬한 선조의 죄이지
원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원균이 이순신의 뒤를 이어서 삼군수군통제사가 되었고
항상 이순신의 대척점에 서있었기때문에
훗날의 글쟁이들이 드라마틱한 설정을 위해서 원균이 모함했다는 이야기를 집어넣은것뿐입니다.

선조는 이순신을 내치고 원균을 원수로 삼았는데
신임원수인 원균에게도 계속 전투를 재촉합니다.
그러나 원균역시도 이순신과 똑같은 이유로 출정을 거부합니다.
뛰어난 해군 장수였던 이순신과 원균은 판세를 정확히 읽을줄 알았던 겁니다.

선조는 분노합니다.
한놈이 말을 안들어서 갈아치웠는데
갈아치운놈도 말을 안듣는겁니다.
선조의 채촉은 더욱 심해지고 그당시 육군의 원수였던 권율장군은 원균을 불러서
출정을 재촉합니다.
원균이 출정을 거부하자 권율장군은 원균을 묶고 곤장 50 대를 칩니다.
이 무슨 황당한 경우인지 ?
육군 참모총장이 해군 참모총장을 불러서 곤장을 친겁니다.

그런 닥달을 받은 원균은 어쩔수없이 며칠지나서 출정을 합니다.
그리고 이순신과 원균이 예상했듯이 패전을 하게되고
수많은 군선과 병사들의 목숨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신도 죽고 맙니다.
원균의 실책이라면 출정하지 않아야될 전투에 등떠밀려 출정한 일입니다.

긴칼을 옆에 차고 깊은 시름에 잠못이룬 이순신 장군 .
그와 똑같은 고민으로 번민했을 원균 장군.
한사람은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후손들의 칭송을 받고 있고
또 한사람은 나라을 망친 소인으로 경원시 되고 있군요.

그건 아마도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과 그의 아들 원사웅이 같이 전사한 때문일듯 합니다.
원균은 대가 끊겼고 그래서 원균을 위한 진실을 밝혀줄 후손이 없었기 때문일듯 합니다.

원균이 휼륭한 장수였던 객관적 증거는
조선시대 유명한 오성과 한음 이항복과 이덕형 그리고 이원익이 6 년간에 걸쳐서
공신을 구분합니다.
그중에 선무 1등 공신으론 권율과 이순신 그리고 원균 뿐입니다.
그리고 더 황당한 사실은
공신은 선무공신 ( 전쟁에 참여한 공 )과 호성공신 ( 왕을 호위한 공 )으로 나뉘는데
선무 1등 공신은 위에 말한데로 세분 장군뿐이고 2등급에는 5 명이고 3등급에는 10 명
총 18 명입니다.
그런데 호성공신은 무려 86 명이나되고 그중에는 내시도 24 명이나 포함되어있습니다.
나라에 전쟁이 나자 전장에 나가 목숨걸고 싸운 장수는 겨우 18 명이 공신에 오르고
왕과같이 피난하며 안전한곳에서 왕을 돌본 사람들은 86 명이나 공신에 오릅니다.
선조의 됨됨이를 알수있는 대목입니다.



청렴했으며 무재가 뛰어났던 호방한 무인 원균.
나라을 위해 혼신을 다해 온몸을 불살랐던
충신 원균에 대한 후손들의 야박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상 , 
조국을 위해 패전할 전투에 참전했으며 온몸을 불살랐음에도 불구하고
후손들의 욕을 먹고있는 원균 장군에 대한 변명이였습니다.


이글은 제가 다른 공간에 먼저 올렸던 글이라서
윗글에 대한 정확한 답글은 되지 못합니다만
내용을 다시 수정하기는 너무 많은듯 하여 그대로 올립니다. 

첨가하자면 원균은 본시 육군장수로써 여진족을 막아내는 임무를 맡았었고
충실히 그 임무를 수행하여 명장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원균이 해군이 된것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불과 두달전이라서
해전에 관한 경륜이 무척 짧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이순신 장군의 극적인 내용들은
조선왕조실록중의 선조실록에 있는 내용보다는
후에 다시 쓴 선조 수정 실록에 거의 나와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해전을 이루어낸 명장 !
모든 백성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성웅의 이야기를
후에 그의 후손들이 다시썻으니
선조 수정 실록은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좀더 나옵니다.

대우받지 못했던 충신 원균 .
후세에 오히려 욕을 먹는 원균 .
한평생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그의 영혼은 하늘에서 너무나 상처받고 있을듯 합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원균장군에 대한 자료로는 참 많이 부족했군요.
그저 제 감정에 충실한 글이였을뿐이네요.
언제고 시간을 내서 억울한 대우를 받고 있는 노장군 원균 장군에 대한
가려진 진실을 다시 한번 써볼까 합니다.

정기룡 장군.
원균 장군.
잊혀지고 가려지고 잘못 알려진 우리의 영웅들이
역사가 바로서는날 제대로된 후손들의 대우를 받을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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